어른이 되고 할머니에게 나던 특유의 냄새를 어디선가 맡으면 어렴풋한 추억이 다시금 떠오른다. 고향 집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안정되거나 상대의 냄새로 기분이 좋아졌던 경험은 한 번씩 있을 터. 때로는 냄새로 추억을 떠올린다. 실제로 '냄새'가 인간의 뇌에 잠재적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본능적으로 나와 익숙한 향기에 더 친근감 느껴…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사이가 좋은 친구는 체취도 비슷할 가능성이 있다'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스라엘 바이츠만 과학연구소의 인발 라브레비(Inbal Ravreby) 박사후 연구원 등 연구팀은 포유류가 냄새로 편가르기를 한다는 점에 주목해 "사람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냄새를 통해 무의식중 체취 유사성을 발견하고 그것이 우정을 촉진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가정했다.
연구팀은 첫 만남에 바로 호감을 느껴, 즉시 동성 친구가 된 남녀 20쌍(22~39세)을 대상으로 화학 분석 등 소규모 실험을 진행했다. 먼저 실험 참여자 20쌍에게 이틀에 걸쳐 무향료 비누로 몸을 씻고 마늘이나 카레 등 향이 강한 식품 섭취나 향수 사용을 피하고 파트너와는 다른 방에서 자도록 요청했다. 또 티셔츠를 제공하고 매일 밤 최소 6시간 동안 착용하도록 했다. 티셔츠는 이틀 동안 착용한 후 냉동 저장했으며, 분석 1시간 전에 해동했다. 그리고 티셔츠에 배인 체취를 소형 가스 분석 장치인 'PEN3 eNose'를 이용해 화학적 유사성이 있는지 분석했다. 이와 함께 실험 참여자 25명에게도 랜덤으로 고른 두 장의 티셔츠 냄새를 맡도록 해 냄새가 유사한 지 확인하도록 했다.실험 결과, PEN3eNose와 사람 모두 나선 사이보다 친구 사이의 냄새가 '비슷하다'라고 판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사람은 티셔츠 2장을 비교했을 때는 잘 판단할 수 있었지만, 3장이 준비됐을 때는 냄새의 유사성을 쉽게 판단하지 못했다.
이어서 연구팀은 모르는 사람들끼리 첫 만남에서 친근감을 느끼는지를 냄새로 예측 가능한지도 검증했다. 이 실험에서는 초면인 사람끼리 가까운 거리에서 2분간 말없이 서로의 손동작을 흉내 내는 미러 게임을 진행했다.실험에 참여한 총 66쌍 가운데 3분의 1이 상대방과 마음이 맞는다고 답했다. PEN3eNose 분석 결과 마음이 맞는 쌍은 그렇지 않은 쌍에 비해 화학적 유사성이 유의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뿐만 아니라 냄새 유사성을 통해 71% 정확도로 '마음이 맞을지'를 예측하는 데 성공했다.연구팀은 "후각의 역할은 여러 사회적 금기로 지금껏 폄하되었으며, 사회적 관계 형성에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졌다. 첫 만남에서 시각뿐만 아니라 후각을 통해 상대에게 흥미를 갖기 시작한다면 체취는 관계 형성에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라고 언급했다.
관계 형성에 무의식적으로 ‘후각’을 사용하다고체취는 관계 형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때로는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같은 '노인 냄새'라고 할지라도, 어떤 이는 할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친근한 냄새라고 느끼고, 어떤 이는 노인에게 나는 퀴퀴한 냄새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냄새가 다른 것은 당연지사. 신기한 것은 사람들은 왜 노인 특유의 독특한 냄새를 각각 다르게 기억하냐는 것이다.
인간은 여러 면에서 여타 동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출중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지만 후각 기능은 그리 탁월하지 못하다. 하지만 인간은 '연애 상대'를 선택하거나 혈족을 가려낼 때 혹은 암수를 구별할 때 무의식적으로 '코'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과학자들이 밝혀냈다. 이는 인간의 후각 사용 범주가 예상보다 훨씬 넓다는 것을 의미한다. 후각으로 친근함을 느끼는 것 이상으로 관계 형성이나 종족 번식을 위해 후각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노인보다 중년 남성의 체취가 더 고약미국 필라델피아(Philadelphia) 소재 모넬 케미컬 센시즈 센터(Monell Chemical Senses Center)의 신경심리학자 조한 룬드스트롬(Johan Edvard Lundstrom)은 20~95세 사이의 남녀 지원자 41명을 대상으로 '체취 실험'에 착수했다. 룬드스트롬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닷새 동안 겨드랑이 쪽에 수유 패드를 꿰매 놓은 티셔츠를 입고 잠자리에 들도록 했다. 낮 시간대에는 박테리아 번식으로 실험 결과가 왜곡되지 않도록 티셔츠를 냉동 팩에 넣어 보관했다. 지원자들은 매일 냄새 없는 비누로 샤워하고, 향이 없는 세제로 침대보를 세탁했으며, 땀샘에 영향을 미쳐 분비물이 화학성분에 변화를 가져오는 매운 음식도 먹지 않았다.닷새가 지난 후 41명의 지원자들에게 체취의 강도와 상쾌한 느낌, 불쾌한 느낌에 따라 등급을 정하도록 했다. 그 결과, 75세에서 95세 사이에 속한 사람들은 사람들의 겨드랑이 냄새가 젊은 층과 중년층에 속한 성인들의 냄새에 비해 덜 진하고 덜 불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가장 독한 냄새는 45~55세 연령대에 속한 남성의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지원자들 가운데 가장 상쾌한 냄새는 45~55세 연령층에 속한 여성들이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체적으로 남성이 여성에 비해 더 나쁜 냄새를 풍겼으나 나이가 들면서 이 같은 차이가 사라졌다. 연구를 진행한 룬드스트롬은 "나이가 들수록 남성 호르몬 수준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여성화가 진행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실험 결과에 따르면 가장 독한 체취가 나는 연령대는 노인 연령대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노인의 냄새가 가장 독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룬드스트롬은 "노인 냄새는 확실히 무언가 다른 것 같다"라며 "이른바 노인 냄새에는 병원 냄새가 섞여 들어간 양로원 냄새와 함께 많은 부정적인 연상을 하게 만드는 '편견'이 작용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노인 특유의 체취는 자연스러운 변화지만 생활습관으로 극복 가능사실 노인 특유의 체취는 노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변화다. 40대 이후부터 나기 시작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짙어진다. 여기에 다른 냄새가 섞이면서 부정적 인식이 발생한다. 노인 특유의 냄새 원인은 '노넨알데하이드'이다. 노넨알데하이드는 피지 속 지방산이 산화되면서 생성되는 물질로, 모공에 쌓여 퀴퀴한 냄새를 풍긴다. 이 성분은 우리 몸에 유해균 증가, 피부 산성화, 지질 성분 변화 등을 야기한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활동량·신진대사·땀분비량·항산화기능 등이 저하되고, 신경계 퇴화로 불포화 지방산이 노화되며 노넨알데하이드를 제거하는 능력도 감소한다.
노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노인 특유의 체취는 인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다만 잘 씻고, 생활환경과 습관을 개선하면 어느 정도 냄새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노넨알데하이드는 피지샘을 거쳐 피부를 통해 배출되는 만큼 규칙적으로 샤워를 하고, 주 2회 이상 입욕을 하는 것이 좋다. 피부를 불려 씻으면 산화 성분이 효과적으로 제거된다. 씻을 때는 비누나 바디워시를 사용해 피지를 깨끗이 제거해야 하며, 회음부나 겨드랑이, 발가락, 귀 뒤 등 냄새가 많이 나는 곳 위주로 꼼꼼히 씻어야 한다.매일 피부와 맞닿는 의류나 침구류에도 노넨알데하이드가 묻을 수 있다. 분비물과 땀을 많이 흡수하는 속옷과 양말 등은 더 자주 환복하고 세탁하는 것이 좋다.집에 있을 때는 호흡 과정에서 나온 냄새 유발 성분이 집안에 축적되지 않도록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며, 하루에 일정 시간 동안은 밖으로 나가 햇볕을 쬐는 게 좋다. 자외선에는 살균 효과가 있어 냄새 제거에 도움이 된다. 산책을 하면 땀과 함께 노폐물이 배출되어 냄새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노폐물 배출을 위해서 물을 자주 마시는 것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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